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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말남과 꼬꼬의 미드 이야기

블랙미러(Black Mirror) 시즌 1 : 에피소드 3: 당신의 모든 삶

블랙미러(Black Mirror) 시즌 1 에피소드 3

에피소드 3: 당신의 모든 삶 The Entire History of You

 블랙미러 시즌 1의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내용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둥근 원항 탁자에 둘러 앉은 사람들. 한 남자가 면접을 보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주인공으로 보여지는 남자의 이름은 리암이다. 그런데 잠깐, 등장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가운데 귀에 꽂히는 한 대사.
 "좋아요, 리암.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와 일하게 된다면 인사과에서 당신의 기억을 철저하게 재생해 볼 거에요."
그리고 리암은 대답한다. 지금이라도 준비되어 있고 모든 기억은 삭제되지 않고 매개 변수에 잘 있다고.

<출처 : 넷플릭스>

 리암과 그의 아내, 피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한 개인이 경험한 모든 것이 '그레인'이라 불리는 귀 뒷쪽에 심어 놓은 칩을 통해 저장된다. 물론, 우리 뇌도 기억의 저장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뇌가 망각이라는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이 그레인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것이다. 작은 리모컨 장치를 누르면 눈동자가 스크린 기능을 하는 모드로 변하고 이전의 기억을 검색해서 내 눈 앞에서 다시 재생되도록 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삭제도 가능하다. 마치 지금의 우리가 주요 자료들을 usb에 저장해 두고 꺼내 보고 필요없게 되면 지워 버리듯 말이다. 이렇게 저장된 나의 기억은 tv 화면이나 스크린을 통해 흡사 영화를 보듯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도 내 저장된 기억만 재생해서 보여주면 나의 신분과 출입국 기록이 확인되고 여행을 다녀온 추억은 사진이 아닌 내 기억을 다시 재생함으로써 친구들과 공유되고 기억을 재생하기만 한다면 지금 만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잊어버릴 일도 없다.

<출처 : 넷플릭스>

 리암은 업무평가회(면접이 아닌)를 마치고 부인인 피가 친구들과 갖는 저녁 모임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전에 알았던 사이라고 가볍게 얘기한 조나스를 대하는 피의 태도에서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리암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를 추궁하고 피의 작은 거짓말을 꼬투리 잡아 심하다 생각되리만큼 다음날까지 계속해서 피를 몰아 세운다. 이미 머릿속이 아내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찬 리암은 술에 취해 조나스를 찾아가 힘으로 제압한 뒤 그의 모든 기억을 억지로 재생하고 삭제시키기까지 한다. 술이 깬 후, 자신의 기억을 돌려 보던 리암의 손은 조나스의 기억이 지워지던 그 찰나에 눈에 들어온 한 장면에 멈춰지고, 굳은 결심을 한 듯한 그는 피에게로 향한다.

<출처 : 넷플릭스>

 

 나의 모든 기억이 저장될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고 부럽기까지 하다. 바쁜 출근 시간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안나 찾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친구나 가족들과 보낸 즐거웠던 시간은 언제든 정확하게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과거의 모든 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워지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 속의 디스토피아적 사회에서는,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는 기억의 재생은 그 본래의 선한 의도가 변질되어 현재나 미래에 시선을 두게 하기 보다는 저장된 과거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단지 기억의 저장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러워만 하는 우리에게 인간에게 주어진 '망각'이라는 기능이 담고 있는 그 커다란 의미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져 주기도 한다. 집안 곳곳을 돌며 그 집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을 재생하고 괴로워하는 리암의 모습을 보면 모든 기억이 저장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결코 핑크빛으로 보여지지만은 않는다. 피는 부부 사이의 신뢰를 깨뜨렸고 그레인(어쩌면 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을 매개체로 리암의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귀 뒤의 이 작은 장치가 과연 모두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씁쓸한 의구심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